산문 연습

야생의 꽃과 생활

산과 물 2005. 5. 16. 14:05
 

참 밝은 하루입니다.

좀 덥기도 하지만 교정을 두른 산을 둘러보면

연두빛 생명력이 저에게 힘을 넣어 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매일 쉬는 시간마다 가 보는

나의 야생화 동산도

오늘 아침엔 부쩍 자라났지 뭐예요.


성남에는 전혀 비님이 오시지 않았는데

나의 꿈동산엔 촉촉한 꽃비가 내렸나 봐요.


왠지 마음이 풍성해진 느낌이 들어

즐거운 하루가 기약되는 아침이었습니다.


오늘 시험이라 수업 부담이 없어서

더욱 가뿐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르죠.


제가 제일 귀엽고 살갑게 대했던 노루귀는

이젠 엷은 미소나 수줍음이 없이

다 커 버렸지 뭐예요.

자식 귀엽고 예뻤었는데…

이젠 다 커서

아주 씩씩해 졌는데

이젠 내가 보살필 필요가 없어서인가?


품안에 자식이라더니

이젠 애지중지 정성을 드릴 필요가 없어서 일까?


그런데 노루귀 그늘진 바닥을 가만히 보니까

이게 웬일이에요,

노루귀가 아주 귀여운 새끼들을 낳았네요.

아마 요놈들도 내년에는

여린 솜털 흔들리며 자줏빗 연한 예쁜 노루귀를

자랑처럼 흔들거예요.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노루귀 옆에 자줏빛 매발톱꽃이

아주 예쁘고 씩씩하게 날카로운 발톱을

움크리고 있지 뭐예요.


벌써 나의 꿈 동산에

연분홍 두 갈래 머리를 예쁘게 따서 묶고

하얀 이를 부끄럽게 드러낸 금낭화가

이젠 자기에게 관심을 갖아 주지 않는다고

바람에 몸을 흔들어 투정입니다.


2주전만 해도 금낭화가 제일 예쁘다고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께

봄 꽃 구경가시라고 화단으로 끌고 나와서

우리 꼬마각시들 자랑까지 했는데

이젠 좀 꽃색이 바랜 느낌이 드네요.


작년에 충북 감곡에 있는

원통산에서 채취해온

자줏빛 각시붓꽃이 완전히 뿌리를 내려서

마치 화려한 부케꽃처럼 꾸며진 것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사진좀 찍어 줘야지 하고 생각하던 끝에

또 기회를 놓쳤지 뭐예요.

한 백여 개의 꽃이 서로 자기를 보아 달라고

앞다투어 청초한 얼굴을 내어 밀기에

함초롬한 꽃단장 너무 안타까워라.


자식을 키워도 어리고 예쁠 때

사진을 많이 찍어 놓아야 하겠어요.

사진도 자신이 보려는 것보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사람이

더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축대 바위 옆

조용히 햇볕을 받으며 자리를 지키는

백두할미 할미꽃이

이젠 예쁘게 고운 자태 다 버리고

할아버지처럼 수염만 무성해져서

인생이란 이런거야 하며

주변 젊은 친구들에게

무언가 암시하고 있는 모습이

마냥 든든하기만 합니다.


마치 집안에 연로하셔서

아무 일도 못하시지만

집안에 존재하시는 것만으로도

가정이 안정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처럼


나의 꿈동산도 백두할미의 말 없는 진리처럼

그렇게 즐겁게 희로애락애오욕으로

피고지고 피고지고

또 희망을 그리며 꿈을 꿉니다.

 

2005.5.5

율면에서 천부선인 한관흠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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