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연습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산과 물 2014. 7. 19. 13:38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산과물

 

나는 사람 기억을 잘 못한다. 특히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

타인을 잘 알아보지 못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속으로 건방진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시골 고등학교 고3 담임 시절이었다.

한 학생이 교무실에 찾아와서 너 왜 왔니?” 했더니

선생님 혹시 제 이름 아세요?” 하고 물었다.

미안하구나. 네 이름이 뭔데?”

선생님 너무 하십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제 이름을 모르시지요?”

 정말 난감했다. 점점 궁지로 몰릴 듯해서 고민하다가

  “네가 연예인이니? 연예인은 나와 무관해도 각종 매스컴을 오르내리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지만 너는 연예인이 아니잖니?"

  그러니 서운해 하지 마라.”

그래도 선생님 너무하십니다.”

그건 네 생각이지

 

나는 꽃이 아니야. 라고 따라서 해봐.”

  그 학생은 나는 꽃이 아니야.”라고 따라 했다.

 

그래 너는 꽃이 아니라 노랫말처럼 꽃보다 아름답지.”

사람과 꽃의 차이가 무언지 아니?”하고 물었다.

 

  학생은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죠?”라고 말했다.

 

그래, 네가 문학 시간에 배운 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말처럼

  너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야

 

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지요?”

꽃은 손발뿐만 아니라 입도 없으니 말도 할 수 없지

  그런데 너는 사람이니 네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지

 

그러니 네가 의미 없는 작은 꽃에 쪼그리고 앉아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너는 더 이상 꽃이라고 생각하면서 누군가 나를 인식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네 스스로 네가 원하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인식의 주체가 되었으면 해.”

 

다시 한 번 따라서 해봐

나는 꽃이 아니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00, 오늘부터 네가 인식의 주체가 될 수 있겠지

선생님과 약속하자. 내가 3일 안에 네 이름을 못 외우면

  네가 얼차려 받기로 하자!”

  그 학생은

저만 억울하잖아요? 선생님이 못 외우시면 저만 당해야 하는데.”

  그러니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와서 나에게 너를 인식시켜 봐. 할 수 있겠니?

  학생은 그 시간 이후 쉬는 시간마다 내려와서

선생님, 저 몇 번 000입니다.” 라고 했다.

  이틀 연속 쉬는 시간마다 들으니 이젠 확실히 그 학생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00, 이젠 그만 내려와라. 이제 내가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내가 너에게 맞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네가 선생님 말을 들어 주어 고맙구나.”

선생님이 너에게 이렇게 시킨 이유는

  누군가에 인식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극적이라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에

  불평불만만 쌓이게 되기 때문이지.”

, 사람들이 나를 안 알아 주지?”

, 나는 승진 기회 때마다 탈락이 되지?”

, 나는 불행의 연속일까?”

  “학교에서 선생님과의 관계가 좋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성공하는 것도

   바로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나중에 네가 대학에 가서라도 교수님들 찾아뵙고, 교수님!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요?

  제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하세요. 라고 해 봐.”

그러면 교수님들이 너를 기억하고 있다가 좋은 기회가 있으면 너부터 추천할 테니까?”

 

요즘 공부 잘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을 거야.”

공부 잘하면 어디든 시험으로 취직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공부가 행복하게 해 주진 않아.”

사회에서는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공부는 잘하는데 자신만 아는 사람은 팀워크를 깨니 직장 상사의 눈 밖에 나고

   후배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그러니까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승진 대상자에서 누락되니 불행할 수밖에.”

  “네가 선생님을 존중하는 것처럼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상사를 존중하고 후배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하길 바란다.

   그러면 넌 어디서든 환영받는 사람이 될 테니까.”

  “오늘부터 너는 꽃보다 아름다운 학생이구나!”

 

  ‘난 꽃이 아니야, 우리는 꽃보다 아름다우니까!’

 

 아직도 나는 사람 이름을 외우지 못하여 건방진 놈으로 오해를 받는다.

 너나 나나 꽃보다 아름다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이 누군가의 꽃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2014. 7.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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