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잘린 새 / 산과물
어린 시절에
존재한다는 건
나를 위함인 줄 알았는데
살아가 보니
나의 존재가
나만 위한 것일 때
가장 불행함을 깨달았다.
행복이란
타인을 위할 때
또 그 노력이
상대에게 인정받을 때
그것이 위험하더라도
가장 행복한 것임을
사랑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눈에 띄는 화려함을 택한
수컷 극락조 깃털처럼
지나친 화려함은
나를 위함이 아니었다.
굶주린 맹금류의
표적이 될지언정
화려한 장식을 찾는
원주민의 욕망에 의해
발이 잘린 새 극락조처럼
재주 있는 것도
나를 위함이 아니고
산다는 것도
나를 위함이 아니다.
人生이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