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연습

꽃을 보았다

산과 물 2015. 3. 26. 20:05

                         꽃을 보았다

 

                                                                산과물

 

점심시간에 꽃을 보고 꽃이 아름답다고 했다가

교감 선생님이라 여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초임 발령 때 연구수업 누가하냐고 협의하다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차피 할 것을 괜히 버틴게 미안해서 내가 하겠다고 했다.

 

첫 연구부장으로 임명되고 계원 가지고 서로 다투기에

제가 젊기 때문에 계원이 없어도 된다고 하니

선배님들의 배려로 소중한 한명과 함께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계기가 126개월 동안 계원 1명의

유능한 연구부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고3 담임이라 11시까지 자기주도학습에

학생 상담에 교재연구, 교문지도에 업무추진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비교가 슬펐지

막상 내일이라 생각하면 힘든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부서에서 큰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으로 인해 뿌듯함까지 더했다.

 

6년간 도교육청 연구시범학교 및 중심학교도 운영했다.

모두 우수교 표창까지 받았다.

물론 당시 함께했던 계원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그 때도 내겐

교정의 아름다운 꽃도 보이고 홀로 방황하는 학생도 보이고

학생들이 버린 휴지도 보였다.

 

동료들은 내 잘난 체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새끼교장이란 별명처럼 나도 모르게 교장 행세를 했나보다.

 

작은 것 쓸모없는 것이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은

습관과 관심의 문제지 직위에 따른 여유가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라는 직업 때문에

우리 아이들 입학식 졸업식에는 거의 참석한 기억이 없다.

 

아내가 몸이 안 좋으니

올해는 제발 고3담임 맡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9년 연속 담임을 했다.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일요일 자습시간에

학교운영위원님들이 후원해 준 느티나무와 단풍나무를

우리반 학생들을 데리고 운동장 주변에 심었다.

 

그 때 내가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이 학교를 떠나 다른 곳에 가지만

이 학교는 여러분의 영원한 모교다.

옛날 선생님 모교에 큰 대추나무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해서

볼 때마다 애틋했다.

 

여러분이 심은 나무가

졸업 후 동문회 때 여러분 자녀와 함께

김밥 먹을 수 있는 그늘을 만들 것이니

자원자 나오라고 했는데

남학생들이 모두 나와 함께해서 뿌듯했다.

 

지금은 나무들이 자라서

운동장 주변에 넉넉한 그늘을 만들었다.

그 때도 나는 바빴다.

남학생들과 가까워지려고 농구도 하고 축구도 했다.

심지어는 풋살 동아리 지도교사를 하다보니

시합 때마다 서울까지 가서 함께 즐기기도 했다.

그래야 상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역주민과 학부모님들이 학교에 관심 갖게 하기 위해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했고

야생화 탐구반을 운영하면서

학부모와 함께 풍난 석부작도 만들었다.

 

학부모님도 마찬가지다.

교육 전반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선생님들이 하시기 어려운 일들은

학부모의 교육기부와 자원봉사로 해결하면 된다.

2년 동안 교육공동체 대토론회를 열었다.

물론 처음엔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잘난 체가 아니라 학교에서 힘든 것

문제가 되는 것을 부끄럼 없이 드러냈더니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고 적극 나섰다.

아마 학교가 잘했다고 자랑만 했다면

학생과 학부모는 콧방귀 끼거나 공격을 했을 것이다.

 

소통과 배려로 함께하고자 하면

습관처럼 몸에 배여 힘든 줄 모르고 자체가 즐겁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함께하기 때문에

부족한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민원을 제기하지 않아

행복한 지역교육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천 지역에서의 교사시절을 떠난 지 십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곳의 학부모님들이 전화를 주신다.

시골 넉넉한 인심처럼 보신탕 해줄 테니

이번 주말에 내려오라고 한다.

 

지금 우리학교 선생님 중에는

복도에 떨어진 휴지를 지나치기도 하지만

내 집처럼 줍는 선생님이 계신다.

그것은 관리자나 학생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분의 습관이고 관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이야말로 우리 학교의 주인이고

먼 훗날 학생들의 스승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201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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