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연습

어느 노인의 시를 보며

산과 물 2023. 3. 9. 10:20

어느 노인의 시를 보며 / 산과물

 

한평생

까막눈으로 살다가

한글을 배우니

눈이 보이고

귀가 밝아졌다.

 

세상은 존재하는데

읽지 못하니

누구에게 들키랴?

숯처럼 타는 속마음

 

한 글자

또 한 글자

눌러 쓰는 백지엔

설움과 눈물로 얼룩졌는데

 

詩三百 思無邪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어르신들의 에는

간사함이 없다.

 

오직 자신의

한 많은 인생이

오롯이 자리할 뿐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기교가 없다.

 

시집을 내고

출판사의 독촉에

빚쟁이로 사는 글쟁이처럼

인기를 구걸하는

간사함 없이

 

거친 숨소리를 숨긴

오지그릇 뚝배기처럼

뜨거운 국밥도

차가운 막걸리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2023. 03. 09.

 

****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논어> 위정편 2

詩經300여편의 작품들을 한 마디로 평하자면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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