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시를 보며 / 산과물
한평생
까막눈으로 살다가
한글을 배우니
눈이 보이고
귀가 밝아졌다.
세상은 존재하는데
읽지 못하니
누구에게 들키랴?
숯처럼 타는 속마음
한 글자
또 한 글자
눌러 쓰는 백지엔
설움과 눈물로 얼룩졌는데
‘詩三百 思無邪’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어르신들의 詩에는
간사함이 없다.
오직 자신의
한 많은 인생이
오롯이 자리할 뿐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기교가 없다.
시집을 내고
출판사의 독촉에
빚쟁이로 사는 글쟁이처럼
인기를 구걸하는
간사함 없이
거친 숨소리를 숨긴
오지그릇 뚝배기처럼
뜨거운 국밥도
차가운 막걸리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2023.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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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논어> 위정편 2장
詩經의 300여편의 작품들을 한 마디로 평하자면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