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의 행복 / 산과물
가을 찬바람 불면
쪼그라든 텃밭에서
늙은 호박 한 개
호박잎 한 움큼
늙은 오이 서너 개
조선 무 하나
쭈글쭈글 꽈리고추
버스비도 아깝다고
새벽부터 십리 장 걸어
단속요원 눈치 보며
남들 점심 먹을 때
햇볕에 시든 무를 먹고
꾸르륵 허기진 배로
늦저녁 떨이하다가
지쳐 돌아온 할머니
메뚜기 같은 손주새끼
뭐가 그리 좋다고
자식들 버릇 나뻐진다는
며느리 눈치 보며
할매 손에 감춰진
주름살처럼 쭈그러든
지전 몇 천원
201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