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연습

머리를 깎으며

산과 물 2015. 11. 6. 11:04

머리를 깎으며 / 산과물

 

옛날 전장에 나가는 사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기고

비장한 각오로 가족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 丹齋 선생은

놈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꼿꼿하게 세수했다는데

 

지금 나는 편한 의자에 앉아

미용사가 흔드는 대로

줏대 없이 대가리를 흔든다.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났지만

마감하는 날만큼은

의롭게 죽겠다 다짐해 놓고

 

정의인 듯 포장된 여론에

마네킹처럼 자리만 지키며

침묵하는 비겁한 내 얼굴

 

정의롭던 젊은 날의 다짐은

내시처럼 굽실거리며

부끄럽게 늙어 가고 있다.

 

201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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