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연습

묵은지 오남매

산과 물 2015. 1. 5. 14:18

묵은지 오남매

 

           산과물

 

여름 신새벽부터

울엄마 울아빠

삯일을 나가셨다.

 

저녁 무렵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더 그리운 엄마 아빠

 

오남매 동생들은

배고프다 졸라대고

어린 나는 밥할 줄 몰라

발 동동 구르다가

 

옹기종기 장독대

제일 큰 독을 열고

허연 백태가 낀

배추 묵은지 꺼내

 

오랜 여름 가뭄에

야속한 펌프질

마지막 남은 마중물엔

남매들이 힘을 합쳐

올렸다 내렸다 하니

 

질금질금 떨어지는

눈부시게 시원한 물

햇볕 뜨거운 자박지에

자박바박 채워

 

씻고 헹구고 또 시쳐

신맛 매운맛 스러지어

가난으로 파인 도마에

날 무딘 식칼로

저걱저걱 썰어주니

장독에 품어 소화시키던

허멁은 묵은지로

주린 배를 채운 동생들

 

오빠! 고마워.”

형아! 고마워.”

 

장독대같이 옹기종기

정다운 내 동생들

엄마의 따신 밥 대신

시금털털 묵은지 먹던

어엿쁜 내 동생들

 

철부지 어린 눈동자에

밥물보다 뜨거운 눈물이

가난해서 행복했노라고

부드러운 골 타고 흐른다.

 

2015.1.5.14:00

'운문 연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날의 그리움  (0) 2015.01.09
무서운 인간들  (0) 2015.01.09
새끼 시리즈  (0) 2015.01.02
동심(童心)  (0) 2014.12.31
자연과 문명2  (0) 2014.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