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연습

김치를 담그며

산과 물 2024. 11. 21. 09:09

김치를 담그며 / 산과물

풋풋한 가을 배추가
소금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뻣뻣했던 어깨에 힘을 빼니

햇빛 모은 푸른 이마에
땅기운 하얀 무우는
채칼에 쓱쓱 썰어

가을 햇살 붉게 담은
태양초 고춧가루
매서운 겨울 추위 이겨낸
알싸한 다진 마늘
둥글둥글한 귀여운 모양으로
콧등 할퀴는 생강
여러쪽 붙어 있어 쪽파
외로워서 홀로 길쭉한 대파

대양의 파도처럼
짠맛을 함축한 새우젓
설중매 이른 봄향기 담은
새콤달콤 매실청

풋내나지 않게 잘 버무려
서늘한 김장독에서
다양한 맛들이 어울리는
인고의 긴 속삭임 속에

각자의 독특한 맛이 사라지고
숙성으로 맛갈난 김치가 된다.

겨우내 항아리 속에서
숙성하는 김치처럼
우리들의 세상살이도
감칠맛게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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