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연습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법

산과 물 2018. 2. 5. 14:54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법 / 산과물

 

내가 수석에 빠져 동호인들과 강변이나 바닷가로 탐석하러 갔을 때, 내 맘에 드는 돌을 取石하여 기뻐하는데 선배 고수들이 그건 가치가 없으니 버리라고 한다. 이는 壽石에서조차도 자본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비싸게 판매될 수 있는 것, 귀하게 인정되는 것 등이 좋은 수석이고, 개인의 취향에 맞는 것은 그냥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정한 취미는 가격을 부여해서도 안 되고, 대상을 감상하는 법 또한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名畫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명화라는데 내가 보기엔 우리 아이들의 그림만큼 정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남들 앞에서 저게 무슨 명화냐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일 우리가 산속 폐가에 모나리자라는 그림이 있었다고 하면 그 흉가에 더러운 쓰레기와 거미줄을 뚫고 벽에 덩그러니 먼지에 쌓여 걸려 있는 그림을 취할 것인가? 자기 집으로 가지고 오겠다는 사람들은 그림을 아는 사람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림의 진가를 안다기보다는 그림이 가지고 있는 자본적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가치를 모른다면 폐가에서 귀신이라도 붙었을까봐 집에 들이기를 꺼릴 것이다.

 

名畫라는 작품도 어찌 보면 모두 자본이 만든 권력이다.

자본가가 명화를 사고 그 명화가 더 큰 이익을 창출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은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조차도 교양의 범주에 넣어 그 작품에 관심을 갖고 그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교육을 시킨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교양이라고 하니까 어느 정도는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획일화된 의미 교육을 답습하게 된다. 새로운 의견을 달거나 저 그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무식의 소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名畫는 자기 스스로가 느끼고 그 소중함을 알 때 비로소 명화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명화는 그 누군가가 이것은 명화이고 이런 가치를 갖고 있으니 그리 알아야 한다.’라는 직간접적인 세뇌에 의해 명화가 탄생하니 아무리 내가 싫어한다고 한들 명화의 반열에서 탈락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뭉크의 절규를 폐가에서 보았다면 당신이야말로 귀신 본 것처럼 놀라 절규했을 텐데 말이다.

 

2018. 02. 05.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 40조원 추정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 12582000만원(2012년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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