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47세 단군 고열가, 임술57년 4월8일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의 선조는 고리국 사람이었다. 계해58년 해모수는 백악산을 습격하여 천왕랑이라 칭했다. 북부여의 시작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했다.
북부여기 하 5세 단군 고두막, 임인30년(BC79년) 5월5일 고주몽이 분능에서 태어났다. 고주몽: 고구려의 시조. BC58년 고구려를 세웠다. 고진의 손자인 옥저후 불리지 고모수의 아들이다. 삼국사기와 유사에는 해모수의 아들로 되어 있다. 어머니는 하백녀 유화이다. 본부인은 예씨, 북부여로 남하하여 고무서의 사위가 되어 북부여의 왕이 되었다고 하며 소서노를 부인으로 삼아 비류와 온조 형제를 두었다.
가섭원 부여기 시조 해부루, 임인8년(BC79년) 하백녀 유화부인을 부여 황손 고무수가 유혹하고는 승천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 5월5일 유화부인은 큰 알을 낳으시 사내아이가 그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름을 고주몽이라 불렀다. 갑진10년(BC77년) 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어느날 산천에 제사지내고 아들있기를 빌었더니 타고있던 말이 곤연에 이르자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돌에 어린애가 있었는데 금색 개구리모양이라 이름을 금와라하고 태자로 책봉하였다. 임술28년(BC59년) 백성들이 고주몽을 나라에 이로움이 없는 인물이라하여 그를 죽이려 했다. 고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의 명을 받들어 동남쪽으로 도망하여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천에 이르러 이듬해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고구려의 시조가 된다. 계유39년(BC48년) 왕이 죽고 금와가 즉위하다. 2세 금와, 정유24년(BC24년) 유화부인이 돌아가셨다. 갑인41년(BC7년) 왕이 돌아가시니 태자 대소가 즉위하였다. 3세 대소, 을묘원년(BC6년) 봄 정월에 왕은 사신을 고구려에 보내 국교를 청하고 왕자를 인질로 삼고자 하였다.계유19년(AD13년) 왕은 고구려를 침략하였는데 복병을 만나 크게 패하였다. 임오28년(AD22년) 2월 고구려가 침범해 오니 왕은 몸소 무리를 이끌고 출전하였는데, 고구려 대장군 괴유가 살해하였다. 8월 고구려에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고진:고리국(부여의 모체)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며, 옥저후 불리지(고모수)는 고진의 손자이다. 하백녀 유화를 만나 고주몽을 낳게 하였다. 연타발:졸본 사람으로 남북을 오가면서 재물을 모아 부를 이루었다. 은밀하게 주몽을 도와 창업의 공을 세웠다. 뒤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로 옮겨 고기잡이와 소금장사를 하게 되더니 고주몽 성제가 북부여를 칠때 양곡 5,000석을 바쳤다. (출처: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참고 ① TV드라마에서는 고주몽이 금와의 아들로 되어있으나 주몽과 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해모수는 금와의 친구가 아닌 주몽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유화부인도 금와왕의 2번째 부인이 아니라 해모수 증손자인 고모수의 부인이다. ② 고주몽 본부인의 아들 유리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위협을 느낀 비류와 온조는 각각 비류백제와 온조백제를 세운다. 고구려와 백제가 창업되는 그 중심에 소서노가 있다. ③ 우리나라의 역사는 환국 → 배달국 → 조선 → 북부여 → 고구려 → 대진국 → 고려 → 조선 →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 고리국에서 고구려가 나왔고 다시 고구려의 정통성을 얻고자 고려라 이름을 칭했다. 이후 쿠데타를 일으킨 이성계는 옛 조선의 정통을 주장하기 위해 다시 조선이라 국호를 정했으며 일제후엔 다시 한국이라 나라이름을 정했다. 이를 볼때 북한이 북조선이라 칭하는 것 또한 나름대로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소서노: 해부루의 서자의 아들인 우태의 부인이었다. 우태와 함께 있을 때 낳은 두 아들이 온조와 비류이다. 소서노는 남편 우태가 죽고 나서 만일 주몽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여성으로 묻혔거나 졸본부여의 주도권 싸움에 휘말려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스물한살의 청년이며 북부여에 부인인 예씨를 두고 망명하다시피 쫓겨온 고주몽과 시조부인 해부루에게서 이어받은 왕통으로 졸본부여의 통치권을 이어받은 스물아홉살의 과부인 소서노는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적이되기보다는 혼인이라는 서약을 통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나가며 새로운 세력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소서노는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산을 아낌없이 주몽에게 투자하여 그에게 고구려의 초대왕이라는 큰 지위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고주몽은 소서노의 공을 높이 치하했으며 그녀의 내조의 공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듯 했으나 막상 고구려를 세워 왕위에 오르고 북부여에 남겨두고 왔던 아들 유리가 찾아오자 그를 태자로 삼음으로써 소서노의 공로는 부인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버리고 만다. (출처: '역사와 함께하는 여인들' - 네이버 지식iN)
|
'위대한 한민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민족기원지/바이칼호 주민들 (0) | 2006.08.31 |
---|---|
[스크랩] 역사의 미스테리같은 진실 (0) | 2006.08.31 |
[스크랩] 피라미드의 진실- 한민족이 만들었다(동영상 강추) (0) | 2006.08.31 |
[스크랩] (영어 고민 해결) 새 시대의 세계 공용어, 한글(동영상 강추) (0) | 2006.08.30 |
아! 세종 IT 대왕 (0) | 2006.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