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연습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산과 물 2025. 3. 4. 23:32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 산과물

어린시절 다정다감했던
아버지와 첫째인 나는
생동감 넘치는 추억이 많았네.

깊어가는 겨울밤
놋화로에 불씨가 숨을 때까지
옛이야기 이불에 덮혀 잠들고

산과 들에 나갈 때에는
지게 소쿠리에 나를 태워
각종 약초와 나물을 알려주셨네.

고래논 써레질 마친 암소는
경안천에 깨끗이 목욕시키어
소 등을 타고 집에 오기도했네.

국민학교때
밤새 직접 만들어 주신 수수빗자루
친구들이 사온 것보다
훨씬 멋지고 튼튼했었지

집안일보다 동네일에 앞장서
마을 어르신들께는 칭찬받았지만
어머니의 늘어나는 잔소리
그런 아버지라서 더욱 좋았지

가난했던 당신 덕분에
뭐든 손수 만들어 주셔서
함께한 추억이 많아
아직도 소중한 가난의 추억들

칠년간 병상에 누워
육체적 고통에 얽매이시다
비로소 오늘 아침
영원한 해탈의 경지에 오르셨네요.

차분한 얼굴 속에
불러도 대답없는 몸짓에는
영혼의 미소만 남긴 채
아버지는 자식들 몰래
안식의 긴 여행을 준비하셨네.

젊은 날엔
자식들 배 곯을까 걱정하시더니
연로하시고 병든 몸으로
자식들 힘들까 염려하시며
온화한 미소만 남긴 채
짐도 없이 긴 여행 떠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