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연습

태풍 지나고

산과 물 2019. 9. 17. 16:32

태풍 지나고 / 산과물

 

젊은 김삿갓처럼

가시덤불 헤치다 지쳐

집에 돌아와 보니

당신이 꽃이었습니다.

 

비수처럼 쏟아지던

당신의 목소리가

갈라질 즈음

가슴 답답함을 느낍니다.

 

샤넬보다 그윽한 향기

망각할 즈음

젖은 땀냄새가

당신의 향기였음을

이제서야 느껴집니다.

 

그리움에 뒤척이다

잠결에 스치고 지나간

보드라운 살결이

당신이었음을

또 이제서야 느낍니다.

 

첫키스의 추억보다

산나물 무침처럼

감칠맛 났던

당신의 손맛이

침샘을 돌게 하지만

 

젊고 고운 시절은

이미 저만치 보내고

관조하는 눈가

주름진 미소처럼

 

태풍이 지난 후

상수리나무 도토리처럼

젊음의 생채기를

저렇게 남기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고개 숙여질 무렵

또 이제서야 느낍니다.

 

2019. 09.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