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을 통해 본 칭찬과 인정
내 경험을 통해 본 칭찬과 인정
2009.06.19. 한관흠
사람을 변화시키는 외적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칭찬과 인정이다.
人間이란 용어처럼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람[人]의 사이[間]를 넓히는 것이 인간 본연의 속성이다.
칭찬은 귀신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하물며 사람이야말로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신바람 난다.
지난 일을 생각해 보라.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께 인정받을 때 얼마나 신났던가? 시인이나 가수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한 계기가 학창시절 선생님의 칭찬과 인정 덕분이라고 말한다.
별로 잘 쓴 글도 아닌데, "너는 시인의 자질을 갖고 있구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너는 남들 앞에 자신있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다음에 커서 가수로 성공할거야!" 라는 단순한 칭찬의 말에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되어 더욱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날 것이다.
이렇게 외발적 동기로 시작되었던 것이 자신의 내면으로 자리하면서 자성예언인 성공의 주문으로 변화되면서 더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필자도 고2 때까지는 거의 공부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고3이 되면서 학기초에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너는 머리가 좋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성공할 텐데, 이제라도 선생님과 같이 공부 시작하지 않겠니?"라는 중년의 다정다감하면서도 듬직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때부터 헌 책방에서 중학교 영어, 수학 자습서를 사다가 밤새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내게는 고등학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칭찬과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분(지금은 정년퇴임하신 정하원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던들 지금 교육계에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직장에서 부하직원 역시 상사로부터 인정받을 때, 가장 신 바람난다. 일을 못한다고 핀잔을 주는 것보다 칭찬을 통한 인정의 효력은 거의 마술에 가깝다. 칭찬은 무능한 자를 유능한 자로 만들 수 있는 매직을 가졌다. 물론 비난도 악성 마술이다. 반대로 비난은 유능한 자를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91년 처음 경기도 남단의 충북과의 접경지대에 있는 J고교에 발령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 지역에 있는 학교 중에서 거의 선호하지 않는 시쳇말로 비호감의 왕따 학교였었다. 선배님들도 후배인 나에게 절대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지 말라고 했다. 요즘처럼 학생들의 인격을 고려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이 학교에 부임하기 전에 어떤 선생님께서 학생이 잘못했다고 매를 들었다가 큰 봉변을 당했기 때문에 전후 상황을 모르는 새내기 교사인 내게 귀띔해 준 말이다. 당시 그 말엔 건장한 남자 교사인 나도 움찔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고민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그 당시도 우리가 의지했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열정을 다하는 선생님들이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혼을 내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지만 우리에게 공부도 못하는 *통학교 학생들이라고 무시했던 선생님이 혼을 내면 반감이 들었다.
잠시의 추억과 고3때 담임선생님을 회상하면서 교사로서 보람된 일은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고3 졸업해서 6개월간의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번 돈으로 한여름이 끝날 무렵 서대문 근처 독서실에 기거할 곳을 잡고 3개월간 유명하다는 강사들의 단과반 강의를 들었던 것이 학생들 수업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실력도 없으면서 큰소리치면 더 우습기 짝이 없다.
아무리 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서 새벽까지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수능 언어영역의 비문학 문제는 제재가 다양하여 전과목을 두루 섭렵해야 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검색하면 쉽게 찾지만 그 당시는 해당 과목의 동료교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과학 선생님, 사회 선생님들께 꾀나 귀찮은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당시 우리반 학생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이라고 했다. 사실 내가 그 영화를 보게 된 계기도 학생들의 말을 듣고, 어떤 인물인가 궁금해서였다. 약간은 사이코 같지만 학생들을 위한 그의 정렬은 내 젊음과 같아 그 별명이 듣기에 거북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어쩌면 제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도 열정이 있는 사람은 성공하지 않을 수 없다.
상사의 칭찬 때문에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니 인정받게 되며, 인정받으니 더욱 열정을 다하게 된다. 반면에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적 상사는 아집이 강하다. 그래서 부하직원이 설명하는 것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설명을 듣는다는 것이 자신이 상대방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를 인정할 줄 알고 아랫사람을 인정해주니 신바람 나는 직장 분위기를 만들고 (명령에 의해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바람 나서 무언가 더 잘 해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창의적인 열정을 갖게 만든다.
반면에 아랫사람을 억누르거나 길들이려는 사람 밑에서는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하면 비난받기 일쑤이니 알아서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어떤 일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하다가 잘못되면 비난의 화살을 감당하기 어렵기에 일을 시켜도 관련 규정부터 찾고 규정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런 유형의 상사는 부하 직원이 잘못하면 책임을 지려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전가에 비난이란 보너스까지 부담시키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현대의 교육자는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커뮤니케이션의 핵심도 칭찬과 인정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09.6.19.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