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철학자가 되고자 한 화가 르네 마그리트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나는 새는 온통 푸른 하늘빛이고,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은 돌덩어리로 변하여 길 위에 쌓인다. 구름덩어리는 커다란 와인잔에 담기고, 중절모를 쓴 신사는 친숙한 듯 낯설다. 금방이라도 담배연기를 내뿜을듯한 파이프를 두고 그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피카소나 클림트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그의 작품들은 우리 주변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신세계 백화점 본점 외벽을 덮은, 중절모 신사들이 건물 사이로 둥둥 떠다니는 그림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겨울비>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이 여러 명 복제되는 장면도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현대 락음악의 창시자인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마그리트 작품 속 ‘사과’를 응용하여 ‘Apple Records’사라는 음반회사를 설립했다. 락그룹 롤링스톤즈도 마그리트의 작품 <강간>을 패러디하여 레코드판을 디자인했다. 이처럼 신선하고 충격적인 그의 이미지는 대중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마그리트의 어린 시절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국제도시 레신에서 태어났다. 그가 유년시절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요람 가까이에 이상하게 서 있던 거대한 나무 상자, 가죽옷을 입고 헬멧을 쓴 사람들이 탄 열기구가 그의 집에 불시착 했던 것 등이다. 이러한 유년시절의 별난 기억들은 그의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마그리트의 작품 속에서 빌보케*는 커다랗게 변해 숲을 지배하고 구름은 유리잔 속에 담긴다. 이처럼 일상적인 사물들은 평범함을 벗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마그리트의 나이 15세, 그의 어머니가 샘브레강에 투신자살한다. 발견 당시 그녀는 새하얀 치마가 얼굴을 뒤덮은 채로 끌어올려졌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훗날 그의 그림에서 종종 재생된다. <강에 사는 사람들>에서는 사람의 얼굴이 없고 목 위로 허벅지부터 다리가 쭉 뻗어있는가 하면, 하얀 석고대가 얼굴을 대신한다. 마그리트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새하얗고 불분명한 이미지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입체주의에서 초현실주의 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마그리트는 1919년, 그의 나이 22세에 첫 번째 작품 <세여인>을 지루 화랑에 전시하였다. 이 그림은 피카소의 초기 입체주의 회화*를 연상케 했다. 같은 해 마그리트는 우연히 미래주의 작품*이 실린 카탈로그를 얻게 된다. 그는 이를 대단한 발견으로 여기며 이후 십여 년 간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한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기존 문화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다른 미래파 그림들과 같았지만, 에로티시즘을 주로 다룬 것이 독특한 특징이었다. 당시 그의 그림에서의 여체에 관한 빈번한 묘사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초현실주의 화가로 거듭나기 전까지 그는 다양한 화풍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회화기법과 회화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다.
생각하는 사람, 르네 마그리트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면모다. 그러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치중되었던 데에 비해, 마그리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 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였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이다. 상식을 뒤엎는 그의 그림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 빌보케: 난간기둥과 비슷한 구조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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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2월 01일 |
출처 : | 이화여대 시사웹진 DEW | 글쓴이 : DEW 원글보기 ![]() |